직장인 금토일

바티칸 박물관 엘리오도르의 방으로 향했다.


"감옥에서 구출되는 성 베드로" -라파엘로


건물의 구조를 이용하여 사건 발생의 순서대로 묘사된 독특한 구조의 벽화이다.

좌, 가운데, 우 측 순으로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져 있다.




"아테네 학당" -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은 라파엘로가 교황 율리오 2세의 주문으로 그의 나이 27세에 그린 프레스코화입니다. 

 <아테네 학당>은 철학을 상징하는 그림입니다.

 모두 54명의 철학자가 배치되어 있으며 1점 투시도법을 사용하여 묘사하였습니다. 

르네상스의 정신, 곧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 작품이다.

정말 흥미로운 작품이다.

손짓 하나로 이데아를 상징하는 플라톤

더욱이 그의 얼굴은 라파엘로가 존경하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얼굴로 묘사하였다고 한다.

오른쪽 구석에서 수 세기를 관통하는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는 젊은 청년.

그가 바로 작품을 통해 대화하고자 하는 천재 라파엘로이다.

억겁의 시간이 흐른 너무 먼 역사 속 한장면속에서도

철학과 지혜, 유머 또한 갖추었던 위대한 지식인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테네 학당 인증샷!ㅎㅎ)

이상을 나타내는 플라톤의 바로 옆에 손짓과 함께 현실을 중시하는 플라톤이 묘사되어 있고,
그 밖의 수많은 수학자와 철학자들이 그려진 걸작이다.

정말 흥미롭운 작품이다.


바티칸 투어 대망의 하이라이트,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향하였다.


엄숙하고 경건한 성당 안을 관광객 무리들에 끼어 함께 들어가 보면

정면에는 미칼렌젤로의 "천지창조"가,

양쪽 벽면에는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핀투리키오, 등 르네상스 거장들이 협업한

"모세의 일생", "예수의 일생" 연작이 우리를 맞이한다.


압도적인 무게의 공기와 중압감 아래에서 

모두가 숨죽이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신이 내린 재능의 유산을 우러러 보았다.

작품의 보존을 위해 카메라 셔터 및 플래쉬를 이용한 촬영은 엄금하고 있으며,

내부의 조명도 제한되어 있다.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다소 흔들렸다.


(시스티나 성당 내부 , 출처 : google.com)

천장의 벽화를 그리기 위해 4년 동안(1508~1512) 약 18미터의 높이에서 작업을 하였다.

천장의 메달려 작업에 몰두했다.

프레스코화(회반죽이 축축 신선한 상태에서 물감으로 그리는 방식) 벽화라는 특성상 시간과의 싸움이였고

웅크린 자세로 오랜시간 일을하며 온 몸에 종기가 생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 -미켈란 젤로


최후의 심판과 관련된 일화를 살펴보면,

완성된 최후의 심판을 보고 추기경을 비롯한 성직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그림에서 보았듯이 대부분의 인물이 나체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수의 모습이 기존의 성화와는 전혀 다르고,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등 과격한 묘사들로 가득 차 있다. 

당연히 수많은 성직자들과 추기경들은 "이런 나체화는 성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탄원했다. 

그래도 이 그림을 인정한 바오로 3세 생전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바오로 3세가 선종한 이후 소집된 1564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비속한 부분은 모두 가려져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져 결국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그림의 인물에 옷을 그려 가리는 것으로 일단락이 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볼테라에게는 현대까지도 '기저귀 그리는 화가'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이 따라다닌다.

여담으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성화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체화로 그려졌지만 그림 실력에는 타고나서, 더 이상 태클 거는 성직자들은 없었다. 그런데 당시 교황의 의전담당관 '비아지오 다 체세나' 추기경은 누드화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고 '나체들은 거룩한 장소에 적절하지 못하며 홍등가에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혹평을 한다. 

하지만 교황청이 자신을 후원해주고 있기에 이러한 혹평을 대놓고 표현하지 못했던 미켈란젤로는, 6년 반에 걸친 이 그림 제작 과정에서 복수한다. 4구역의 오른쪽 하단에있는 카논의 배 부분에, 체세나 추기경을 '지옥의 수문장 미누스'로 그려넣은 것이다. 미누스의 귀는 당나귀귀로 표현되었는데 당나귀의 귀는 무지하다. 즉, 무뇌하단 상징이고 성기마저 이 물고 있게 그려, 인간의 성적 방종에 대한 하느님의 가혹한 심판을 보여준다. 

이런 미켈란젤로의 장난질에 체세나 추기경은 화가 나서, 당시 교황인 바오로 3세에게 자신의 얼굴을 빼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그나마 수도복을 입고 무덤에서 나오는 영혼을 돌보는 천사로 자신을 표현했는데, 바오로 3세는 자신도 미켈란젤로의 심기를 건드려 작품 등을 통해 피해를 볼까봐, "체세나 추기경님이 연옥에만 계셨어도 제가 어떻게 해보겠는데, 사람인 제가 지옥에서 추기경님을 구원하기란 불가능합니다."라며 체세나 추기경을 버리고 발을 빼버린다.

축성식은 1541년 10월 31일. 일설에는 축성식 당일 성화를 본 바오로 3세가 무릎을 꿇고 "하느님, 심판의 날에 저의 죄를 묻지 말아주소서."라고 청했다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본인의 얼굴도 있다. 사도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살가죽의 얼굴이 미켈란젤로의 얼굴이다.  (출처 : 나무위키)


현재 바티칸 당국은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 보존을 위해 

카메라로 실내 인원수를 파악해 적정 온도 20~25도, 습도 50~60%를 유지한다고 한다.

또한,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를 보호하기 위해 연간 입장객을 600만명으로 제한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 중앙에 위치한 천지창조,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신과 인간의 닿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을 예술로 표현한 걸작.

지금도 수많은 영화와 예술작품 속에 오마쥬로 묘사되고 있다.

성경 속 하나님의 입김으로 생기가 불어넣어져 창조되었다고 묘사된 인간의 모습을

더욱 더 극적으로 창조해낸 작품.

신과 인간이 만나기 직전 그 찰나의 팽팽한 긴장감이

수세기를 관통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나약함과 동시에

 태초부터 인간 깊은 곳에 간직된 자유의지에 대한 본성을 미켈란젤로는 말하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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